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민 체감도가 높은 라면에 대해 자발적인 가격 인하를 요구했습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한 데 비해 먹거리 물가는 치솟은 데다 밀 시세가 하락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라면 제조사들은 즉각 가격 인하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라면 가격 인하 요구
추 부총리는 18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지난해 (라면값이) 많이 인상됐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은 그때보다 50% 안팎 떨어졌다"며 "이에 맞춰 기업들이 적정하게 가격을 내리든지 대응해줬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할 수는 없다"고 전제했지만 "소비자단체가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가격 조사도 하는 등 압력을 행사하면 좋겠다"고 말해 식품업계에선 사실상 강력한 가격 인하 신호를 준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농심, 오뚜기 등 라면 제조사들은 작년 9~11월 원가 상승을 이유로 라면 판매 가격을 9.7~11.3% 인상했습니다. 밀 수입 가격은 작년 9월 사상 최고치인 t당 496달러에서 지난 2월 449달러까지 하락했지만, 평년 평균치(283달러)에 비해선 1.6배 높은 수준입니다.
라면 기업들은 지난해부터 단행한 가격 인상과 해외 부문 호실적 등의 영향으로 지난 1분기에 대폭 개선된 실적을 내놨습니다. 이를 계기로 소비자들은 "라면의 원자재 중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밀 가격이 많이 떨어진 만큼 이제는 가격을 내려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했습니다.
정부가 강하게 압박하자 라면 제조사들은 라면값 인하 검토에 나섰습니다. 한 라면업체 관계자는 "원재료값과 인건비, 물류비 등 원가 부담이 여전히 높은 게 실상이지만, 국민의 고물가 부담을 줄이는 차원에서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라면 가격에 압박하는 이유
추 부총리가 라면을 콕 찍어 가격 인하를 압박한 것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반적으로 둔화하고 있지만 라면을 비롯한 주요 먹거리 물가는 두 자릿수로 치솟아 국민들이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됩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폭(3.3%)를 나타냈지만 가공식품·외식 부문의 세부 품목 112개 중 31개(27.7%)의 물가상승률은 10%를 웃돌았습니다. 특히 라면은 소비자물가지수가 1년 전보다 13.1% 인상했습니다.
팜유와 합쳐 전체 생산비용의 60%정도를 차지하는 밀 시세가 하락한 것도 이유입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거래되는 소맥 선물의 이달 평균 가격은 t당 231.0달러로 지난해 5월과 10월 대비 각각 44.9%, 27.7% 하락했습니다.
라면 업체 입장
라면 업체들은 가까스로 회복한 수익성(영업이익률)이 다시 악화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국제 밀 가격도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이 최근 다시 격화해 반등 추세를 보이는 점을 감안하면 안심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주장입니다.
한 라면 회사 관계자는 "지난 2년간 반토막 났던 영업이익률이 해외 판매 호조로 올 들어 가까스로 정상화됐다"며 "원가 부담이 전반적으로 큰 상황에서 국제 밀 가격만을 이유로 가격을 내리면 수익성이 다시 악화할 것"이라고 토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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