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덮친 이상기후로 사료용 곡물 생산이 급감하면서 올 하반기 사료값이 급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뭄과 폭염 여파 등으로 배합사료 주원료인 옥수수 등의 올해 글로벌 생산량이 급감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러시아가 '흑해 곡물협정' 파기를 위협하고 나선 것이 악재로 떠올랐습니다.
배합사료값 상승세
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배합사료의 올해 1분기 평균 가격은 kg당 681.7원으로 전분기(697.3원)보다 2.2% 하락했습니다. 배합사료값은 축산물을 비롯해 식품물가 전반에 큰 파급효과를 미치는데, 2년 가까이 오름세를 지속해 온 배합사료값이 하락 반전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3분기 국제 시세가 떨어질 때 계약한 옥수수, 대두(콩) 등의 물량이 국내에 들어와 배합사료 제조에 투입된 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문제는 올 들어 다시 사료용 원자재 값이 상승세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물류대란으로 가격이 급등세를 타기 시작한 2020년 1분기와 비교하면 여전히 43.6%나 높습니다.
한국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3월 수입 사료 원료 가격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11.4% 오른 173.7을 나타냈습니다. 주요 사료용 곡물의 수입단가는 밀이 t당 358달러로 전년 대비 8.0%, 옥수수가 332달러로 2.3%, 대두박이 546달러로 9.4% 상승했습니다.
옥수수 공급량 감소
하반기 사료값 급등발(發) 식탁물가 불안이 예견되는 배경엔 세계를 덮친 이상기후가 있습니다. 5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3위 옥수수 생산국 아르헨티나의 2023수확연도 옥수수 생산량은 3800만t으로 전년 동기 대비 생산량이 26.9% 감소했습니다. 여기엔 지난 3월 아르헨티나에 닥친 63년 만의 최악 폭염과 가뭄이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올해 들어 아르헨티나에서 가뭄으로 타격을 입은 지역의 면적은 스페인 국토의 세 배로, 이에 따라 올해 세계 옥수수 공급량은 전년 대비 13.9% 감소할 전망입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옥수수 수출량도 전년 대비 각각 25.1%, 46.1% 줄어들 것으로 관측됩니다.
올해 소비량은 전년 대비 2.4% 감소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더구나 중국이 지난해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후폭풍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어 중국 내 돼지사육 증가에 따른 수요 폭발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2022~2023년도 콩 생산량도 3050만t으로 전년보다 29.0% 줄어들 전망입니다. 아르헨티나는 배합사료의 핵심 원료가 되는 대두박 수출량이 세계 수출의 45% 내외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큽니다. 3월 중순 아르헨티나의 대두박 수출 가격은 6개월 전보다 16% 상승했습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아르헨티나의 수출 감소는 대두박 수입이 꾸준히 증가해 온 동아시아에 가장 큰 타격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러시아 흑해협정 변수
러시아는 주요 7개국(G7)이 러시아 제재 강화 방안으로 전면적 수출 금지를 검토하자 오는 18일 만기가 돌아오는 흑해 곡물 수출협정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고 위협하고 있어 또다른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흑해 협정은 러시아·우크라이나가 전쟁 발발 후 러시아가 봉쇄했던 흑해 연안 항구에서 밀, 옥수수, 콩 등을 안전하게 수출할 수 있도록 보장한 협정입니다. 국제 곡물 가격은 전쟁이 터진 2021년 초 우크라이나의 수출길이 막히면서 급등세를 탔다가 흑해 협정이 체결된 지난해 7월부터 조금씩 하락했습니다. 곡물 가격이 최정점을 찍은 지난해 6월과 비교하면 지금은 40% 가까이 빠진 수준입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흑해 협정 파기를 위협한 지난달 18일 전후해 곡물 가격은 급등세를 탔습니다. 국제 곡물시장에선 "러시아가 흑해 협정을 연장하지 않으면 국제 곡물 가격이 지난해 6월 가격 수준으로 돌아가는 건 시간문제"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전체 식품가격 상승 우려
유통·식품업계 관계자들은 "하반기에 사료값이 예상대로 강한 상승 흐름을 탈 경우 식품가격 전체를 끌어올릴 공산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사료값 상승 → 축산농가 원가부담 증가 → 축산물값 상승 → 축산제품 가격 상승 순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료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흐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와 비슷한 수준의 위기로 보고 있다"며 "높아진 원·달러 환율도 부담 요인"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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